산행기

가을 나들이 (금정산, 천성산, 재약산 산행)

Parkyoungki-Paolo 2006. 9. 22. 14:39
 

가을 나들이 (금정산, 천성산, 재약산 산행기)


야외 활동하기에 좋은 날들이다.

이렇게 좋은 날 아껴두었던 산행 계획을 실행하였다.


9월19일 10시30분 범어사 관람을 마치고 이곳을 들머리로 하여 금정산엘 올랐다.

4시50분에 집을 나서 서울역 6시발 KTX는 부산역에 8시45분에 도착하였으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범어사는 우리나라 5대 사찰로 유수 깊은 호국사찰다운 갖은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크고 둥근 검은 바위들로 구성된 계곡 길엔 태풍 산산이 지난 여파로 물이 넘쳐흐르고

있으며 주변 수목은 울창하고,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통나무를 잘라 심어놓은

계단길이 걷기 편하였고 중앙 분리대엔 키 큰 잡초가 무성하여 스치는 바람에 흔들렸으며

북문을 거쳐 정상인 고당봉(801.5M)에 오르니 부산시내와 김해 평야, 양산시내가 한눈에

시원스레 들어왔으며 비를 쫓아온 햇살은 오늘도 정갈하였다.


산 입구에서 바라본 산의 풍경보다는 산 속에 들어와서 본 산의 풍경이 좋았고,

정상에서 바라본 산의 풍경은 더 좋았다.

나는 한참을 머물며 정상에서의 실시간 행복을 즐겼다.


다시 북문을 거쳐 동문에 이르는 길은 아주 장쾌한 산행길이다.

금정산이 이토록 산행지로서 훌륭할 줄 미처 몰랐기에 놀라움이 컸고,

사방으로 확 트인 호쾌한 시야는 거칠 것이 없다.

비가와도 눈이 내려도 좋을 나름의 산행 즐거움이 연상되었다.

남문으로 향하는 우측으로는 낙동강이 도도히 흐르고 좌측으로는 서면을 넘어 초량호수가

고요하였으며, 군데군데 낮은 산봉우리가 회색도심 속 섬들로 보이기도 하다가 혹은

산맥 속에 속한 작은 마을들로 회색지대가 보여 지기도 하였다.

내가 걷고 있는 금정산 줄기는 옛날에는 바다로 고스란히 떨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원효봉에 이르러 마치 만리장성인양 모양세가 흡사한 성곽줄기가 나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선이 아름답고 기암괴석과 어우러지니 멋들어진 그림을 연출하고 있다.

주변의 너른 억새밭은 햇살을 받아 해맑게 영글어 가고 있었으며 드물게 노송이

자리하고 있음에 서정어린 모습이다.

동문까지 기대이상의 즐거운 산행으로 마주치는 부산 산행인들에게 부러움의

눈인사를 보냈다.

 

하지만 감격은 동문까지였다.  

이곳 동문 주변에는 많은 음식점이 난무하여 생활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어 좋지 못하다.


산맥을 자르는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남문으로 향하는 길은 오래된 잡목 숲이다.

장쾌한 산행은 동문에서 마감하고 여느 산행지와 다름없는 감정으로 케이블카가 지나는

아랫길로 하산하였다.


산행은 5시간 남짓이었고 양산을 거쳐 내원사 입구에는 18시경에 도착하였다.

폭이 50여미터 정도인 계곡에서 여울지는 물소리가 힘찼으며 빛이 흐려지는 시간에

나는 물소리 들리는 계곡 옆 외딴 모텔을 숙소로 택하였다.

어두운 밤 홀로 산책하며 고개 들어 위를 보니 밤하늘호수엔 별들이 무수히 반짝였고,

창을 열어 물소리를 안으로 불러들이며 내 영혼을 꿈속으로 풀어 놓았다.


9월20일

아침노을 붉게 지며 밝아오는 6시30분경 내원사로 가는 길은 상쾌하다.

계곡이 좋고 기암괴석이 곳곳에 있고 작은 폭포들이 줄지어있는데 모두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스스로 파랗게 멍들어져 유유자적 푸르게 흐르고 있었다.


내원사 인근 숲에는 숲의 정령 아침이내가 옅은 녹색 빛을 발하며 넓게 서려있다.

사유의 시간을 갖기 좋은 이곳에서 숲의 정령을 만나고 즐기며 아침요기를 하였다.


천성산으로 가는 길이다.

천성산은 지율 스님과 도룡뇽으로 메스컴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산이지만 이 산이 인기순위

65위의 산이며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으로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설명된 산림청의 선정이유와 같이 경관이 빼어나고 화엄늪등 생태계

보전가치가 풍부하고 희귀 서식 동식물이 많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자연은 영원한 세계이다.


아침이라는 신선한 분위기 속에서 내원사 관람을 마치고 천성산2봉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른 된 돌비알로 두 발만으로는 오르기 힘들어 스틱을 사용하기도, 양손을 사용

한참을 기어올라야만 하였다. 발이 무겁고 숨이 가빠 힘들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한 뒤라야

정상석(812M)이 눈에 들어왔으며 정상의 하늘은 코발트 빛 으로 새하얀 솜털 같은 구름, 그리고 이른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상쾌한 바람이 나와 함께해 주었다.


정상에서의 기념사진을 타이머에 의지하여 만들고 제1봉을 향하였다.

임도를 지날 무렵 불현듯 멍멍이 소리가 나더니 중개 두 마리가 내 앞으로 들이닥쳐

공포를 느끼는 찰나 다행히 그냥 스쳐 지나갔다.

흑구와 백구였는데 색의 조화를 맞혀 쌍을 이루었는지 모르겠으나 소리 내며 노는 모습이

아주 즐거운 데이트를 즐기고 있음엔 틀림없었다. 


다시 가파른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허위단심 오르막을 친 후 제1봉 능선에 접어들었다.

이내 시야가 확 트인 경관이 장쾌하였으며 사방 모든 것이 내 시력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멀리 바라다 보였다.

한반도에서 동해의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는 천성산 제1봉은 높이가 922.2M이다.


하지만 땀 흘린 만큼이나 낙담스러웠다.

최정상에는 아주 넓게 군사 레이더시설 기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지뢰조심! 책임 안 짐!

이라는 뜻의 경고판 문구가 내 두 다리를 떨게 만들었다.

정상은 밟을 엄두도 못 내고 경고문 글귀를 기념으로 삼아 사진을 남기고 유명한

화엄늪을 거쳐 홍룡사방향으로 하산키로 하였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생태계의 보고 화엄늪과 밀밭늪은 정상 바로

아래쪽 능선부에 넓게 확보되어있었다. 천성산 공룡능선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곳!

억새와 함께 어우러진 드넓은 신비의 늪을 지나온 나의 감정은 정상에 발을 올려놓는

것보다 훨씬 가슴시린 값진 감동이었다.


진귀한 곳을 경험하였다는 흐뭇한 감상에 젖은 채 홍룡사에 당도하니 물레방아 도는

모습이 보였고 밥 짓는 내음에 시장기가 물씬 돌았다.

대숲과 물레방아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대석마을로 향하는 길 마침 빈 택시가

내려오고 있어 승차하였는데 조금 전 카메라셧더를 부탁드렸던 분이셨다.


산행에 관심을 보이셨고 대화가 재미있었던지 구포까지 만원만 내라신다.

이곳 근처에 부산에서 손님을 태우고 왔다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홍룡사를 답사 차

들리셨다 하셨다. 구포까지 가는 동안 내게 세상사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그 분께서는 연락처를 주시며 후일 만날 것을 희망하시고 요금을 받아 미안하다시며

굳이 자판기 커피 값을 마음이라며 주셨다. 나는 점심 후 아주 맛난 커피를 마셨다.


구포에서 밀양을 거쳐 표충사에 당도한 시간은 15시30분이고 오늘 산행시간은 대략

6시간 이었다.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표충사에서 석양이 서산으로 드리우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까지 혼자 남겨져 여유롭게 관람하였으며,

야간 산책길 검고 큰 산 모기에 쫓기어 일직 들어온 오늘에 숙소는 무척 혼란스럽다.

침대는 원형이고 가구들은 바로크 양식이며 침대 옆과 앞이 거울이다.

비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이내 어둡게 하여야만 하였다.


9월21일

여명이 밝아오는 5시45분경 재약산에 오르려 나섰다.

이곳 계곡도 어느 곳 못지않게 참 좋다. 기암괴석과 냇가로 드리운 낙락장송도 좋다.

여울지는 물소리 들으며 계곡을 따라 오르다 너덜 지대를 지나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르니

아주 큰 낙수 소리가 들려온다!

홍룡폭포다! 흐름이 빠르고 경쾌하며 멋지다!

맑은 물에 기분이 밝아졌다.

다시 오르기를 재촉하였다. 보다 더 유명한 폭포를 얼른 만나고 싶어서이다.


층층폭포!!!

내가 본 폭포 중 금강의 구룡폭포 다음으로 아주 멋들어진 폭포가 아닌가 싶다.

제주의 폭포들만은 못하다 하여도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의 구룡폭포, 와 함께 한반도

3대 폭포라는 설악의 대승폭포보다는 훨씬 뛰어나다고 나는 평가한다.

선경을 대한 나는 들뜬 마음을 진정하려 하여도 어쩔 수 없이 최면에 걸린 듯이

폭포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곳 비경을 뒤로하고 쉽게 떠날 수 없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다시 찾기를 다짐하며 조금 더 오르니 평탄한 분지가 나왔다.

사자평원이 시작되는 곳으로 억새로 유명하다지만 그다지 억새는 보이지 않았고,

길섶 산죽을 헤쳐 재약산(수미봉1,108M)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 한기가 느껴졌다.

어제 오른 900M 지점과 1,000M이상 되는 지점과의 차이가 많았지만,

그래도 높은 곳의 하늘은 보다 더 맑으니 빛도 그만큼 더 고왔다.


마주보이는 재약산 주봉 천황봉이 높아만 보이는 것은 물집으로 발가락의 통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부로 내려서니 옛날! 이 높은 곳에서 소박한 삶을 살았을 고사리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고사리 분교가 길 우측 조금 떨어진 곳에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길목에는 털보산장이 “쉬어가는 여유”라는 문구로 호객하고 있었다.

나는 산행하면서 곧잘 만나는 이런 시설물들을 반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산의 기를 탁하게 하는 것이 싫어서이다.

그러나 주변 경관은 평온하였고 문득 억새가 나를 보고 안전산행 하라는 듯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억새 물결로만 세찬 바람이 보였다!


천황봉 정상 가까이에 다가서는 바위 길엔 먼저 수많은 돌탑들과 돌비석들이 사연과

염원을 담은 채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디어 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는 더욱 강한 바람이 지나고 있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겨웠으며 바람 세기가

소백의 그것과 같았고, 이처럼 강한 바람에 밀리지 않고 유유히 나는 까마귀와 하늘에

떠있는 뭉게구름은 그대로 멋진 풍경화였다.


천황봉(사자봉 1,189.2M)에서의 조망은 높이에서 주는 유리함 만큼 멀리 어두운 곳까지

바라다 보였고 가지산, 운문산, 등등의 영남 알프스자락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정상석을 어루만지며 문득 사치스런 고생을 하는 내 모습에 웃음 지어졌다.


하산 길은 비교적 가파르게 내리쳤는데 중턱아래 계곡을 타고 하산하면서는 무수히

많은 무명 폭포들을 접하였는데 이름을 지어주어도 좋을 멋들어진 폭포와 도래샘을

10여 곳은 넘게 보았다.


산 아랫도리에서 조난자를 찾아 나서는 광경을 보았다. 훈련된 세파트견을 앞세우며

119구조대원 10여명이 따라 오르고 주차장 광장에는 전경을 태우고 온 버스3대가 있었다.

주차장에 차량을 세워두고 어제 산에 오른 사람이 연락두절 되어 실종신고 되었다 한다.

나처럼 단독산행에 나선 사람이다.

나에게도 닥쳐올지 모르는 두려운 상황이기도 하기에 느낌이 어수선 하였다!

아무쪼록 실종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발견되었기를 기원한다.

집에 돌아와 아내가 차려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곳곳에서 촬영한 사진과 함께 열심히

산행 브리핑을 하였지만 실종자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자유인-


에필로그


부산은 20대 후반과 30대 내내, 40초반까지 업무 차 수없이 드나들던 곳이다.

열심히 일하며 흘린 땀이 있었기에 오늘날 예전엔 생각지 못하였던 금정산등반을

여유로움을 갖고 즐길 수 있었음이다.

감회 어리게 가을 나들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다.

스쳐지나가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 

낡은 인연들이 그립다. 모두들 잘 지내시는지?


나는, 이렇게 산행기라도 남겨야 기록해 두지 않으면 흩어져 버릴 작은 기억들을 주워

담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해서........또 떠들고 자랑하고 싶기도 해서 글을 남긴다.

잊혀진!!!

그러나 희미하게 꺼져가던 소중한 기억을 어쩌다 심연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을 때 그

얼마나 반가웠던가?


이제 91회, 92회, 93회 산행을 마쳤으니 7곳의 찾을 명산이 남아있다.

따라서 산행기도 몇 번 쓰고 나면 허무로 남을 것이다.........

7곳 밖에 남아있지 않았음이 아쉬움인지 다행인지 왔다 갔다 한다.

굳이 이름 있는 산에 오르지 않고 근교산 품에 안기기만 하여도 좋은 것이 산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 이미 오래 되었건만 어찌했던 계획한 목표를 달성한 후라야 좀더

자유로워 질 것이다.


하기사!!!

100대 명산을 다 오른 후, 누가 나에게 그래서 라고 한다면 힘주어 할 말은 없다.

인생은 덧없는 것!

왔다가 가는 길 달리 할일도 없어 그저 열심히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아보려 할 뿐이다.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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