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강화엘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간편한 준비 후 바로 애마를 몰았고 언제나처럼 남측 한강변도로를 따라 나르는
새들을 즐거이 바라보며 그렇게 강화에 닿았다.
처음 찾은 곳은 자연사박물관이다.
시골스러운 디스플레이였지만 제법 진귀한 전시물을 발견할 때는 무척이나 좋았다.
시골초등학교 교정을 살피며 이곳에서 즐겨 뛰었을 어린모습들을 한참이나 연상하여 보았다.
덕하리와 꽃동네도 보았는데 어찌나 좋던지 살고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강서중학교 뒤로는 단아한 별립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으며 양지바른 앞으로는 넓다란
평야와 바다가 벌거벗은 겨울이였다.이처럼 서정어린 교정에서 치열한 고민과 사색으로
뒷 산에 꿈을 고이 묻어 둔 채 문학적이며 낭만적으로 소녀소년시절을 보냈을.......
하시절 뭇 사람들 모두가 올바른 사회인이 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별립산 제1봉에는 군 레이다 시설이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
(왼편 자그마한 물 구덩으로 보이는 것이 내가 저수지이다.)
(건너편이 북한이다)
나는 교정옆 언덕에 차를 두고 동쪽 봉우리를 향하여낙엽에 묻힌 길을 따라 별립산을
올랐는데........
3부 능선 묘지에 닿는 길 위로는 길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길을 못 찾을 뿐이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위로가면 길을 찾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두려운 바위를 기어오르고 나무 아래로 포복하기를 한참이나 거듭하여 진땀 꽤나 흘린 뒤에야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에 설 수 있었으며 길은 결코 어디에도 없었지만 시원스레 조망되는
풍경으로 수고의 댓가를 보상받았다.
결코 호락호락하게 오를 수 없었던 정상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군 레이더 기지가 있어 접근
불가능하였고 바로 2시방향으로 지근거리에 북녘땅이 옅은 안개속에 내려다 보였다.
다른 능선으로의 하산시에도 길은 흔적조차 없었으니 등산로가 없는, 등산객이 찾지 않는
별립산을 내가 최초로 오른 것일까? 개척산행을 한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단지 들머리를 잘못 선택하여 아무도 다니지 않았던 곳에 길을 만들며 올라야 하는 수고를
많이 했을 뿐이다. 오를 때 보다는 내릴 때 바삭거리는 낙엽 밟히는 소리가 나는 편안했다.
그런데, 사진 촬영 중 갑작스런 나팔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낮추었다.오르는 동안
지뢰라도 밟을까....! 혹시 공비로 오인되면 어쩌나하고 긴장을 많이하며 오른 탓에 나를
간첩으로 오인하여 발견과 동시에 사격신호를 울리는 것으로 착각하였기에 그랬나보다.
놀란 가슴 진정하느라 무척 또 다른 힘이 들었다.
왜 이산을 나는 올라야만 했을까?
(건너편이 석모도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늦은 점심을 외포리 포구에서 바다를 보며 가졌다. 낮게 너울지는 파도에 햇살이 부딪쳐
반짝반짝 은물결을 일으키고 꿈을 실고 오고가는 배들은 제각기 부지런 하였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심수봉은 아직도 주장한다. 꼭 그렇지만은 아닐 텐데도
우기는 데는 장사없다.........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배는 안전하게 보였다. 그러나 배를 항구에만 묶어두려 만들지 않는다.
강화 마니산은 우리민족의 영산으로 얼이 태동한 곳이다. 북사면에는 녹지 않은 눈이 있어
오늘은 더욱 신비롭다. 지도를 믿고 따르다가 민통선을 두 번이나 들락거리는 시간 낭비로
일정이 계획보다 늦어졌음에 이번에는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서
발길 돌렸다.
나는 오늘 길을 걷다가 길위에서 길을 잃었다.
아니 내가 가려고 했던 길이 오늘은 내게 애초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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