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악산 산행기
계절은 이제 봄이라 불러도 좋을 날들이다.
기상청에서도 올 들어 최고의 기온을 기록했다 하였다.
그러나 경칩을 3일전에 맞이했던 오늘,
화악산에 봄은 아직은 일렀다.
추위를 이겨내고 있는 뭇 나뭇가지의 겨울눈들만이
연록을 피워내려 조금 더 기다리고 있었다.
질매재를 들머리로 산행은 시작되었다.
만만치 않은 차가운 바람은 겉옷을 벗을 수 없게 하였고
산행 길은 얼었던 땅이 녹아 매우 질퍽하다.
질퍽한 산길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산행 여건이다.
땀을 흘리기 아까운 심사가 돋는다.
가장 후미에서 시나브로 게으른 산행을 시작하였다.
능선의 하늘은 또 어떠하던가!
운무에 휩싸여 가시거리는 약 300미터 내외로 짐작되었다.
희미함이다. 나는 무엇이든 분명함을 선호한다.
사실 멀리 보여 진다 해도 볼 것도 없는 그런 쓸쓸하고 삭막한
그런 특징 없는 산 이것이 내가 오른 오늘에 황악산의 모양새다.
이름도 황악이 아닌 황학이 어울린다. 험한 점은 조금도 없는
육산의 산세이고 학이 노닐기에는 푸근함이 있어 좋아 보였기에 그렇다.
카메라 포인트도 눈에 들어오질 않아 준비한 카메라는 무게로만 느껴졌다.
우리나라 산중 기가 세다는 마니산, 태백산, 오대산, 그리고 황악산이다.
이 황악산의 높이는 1111미터로 기의 세기를 숫자로 대변하고 있다.
모두가 우뚝 선 숫자로만 그 높이를 갖고 있으므로.....
오늘 나에게도 이런 기가 가득히 채워졌기를 희망해 본다.
그래서 인가?
정상에는 태극 깃발이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유치환 시인의 깃발을 잠시 읊조려 보았다.
하산 길 계곡물은 재잘거리며 신나게 흐르면서 가끔씩은
비교적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즐거운 비명도 질러대는 것이
마치 롤러코스트를 스스로 찾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이내 당도한 직지사는 알려진 유명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잘 정리된 경내에는 탑들과 불상이 제 위치에 알맞게 자리하고 있어
보기에 편안하였고 카메라 포인트도 많아 추억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었다.
마침 제30회 행자 수련회가 진행되고 있어 감색 옷을 착용하고
수련에 임하고 계신 많은 행자승을 뵐 수 있었으나 어떤 안타까운 심정이
내 눈길을 거목으로 돌리게 하였는데 거목은 1600여년의 직지사의 모든
다 행사를 알고 있음 이렷다 생각하니 비로소 마음을 편안하게 갖게 되었고,
잠시 인간의 삶의 본질과 종교적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볼 것 없는 산행의 아쉬움을 직지사에 충분히 보상받았기에,
추억의 기금으로 납부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산행이었다.
81회 명산 산행기
자유인
-2006년3월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