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산행기
갑작스레 산행길에 나선 나에게는 어떤 막연한 바램이 있었지요.
그렇게 79회 명산 산행지로 팔공산을 찾게 되었습니다.
수태골을 들머리로 바겟골을 따라 시나브로 오르다보니
능선이 보였는데 부근엔 구름이 내리듯 하얀 모습이었습니다.
나무서리라고도 말하는 상고대가 맺혀있는 것이지요.
마치 사슴뿔과 같이 멋들어진 모양을 제각기하고 있었는데
사실 사슴의 그것보다는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습니다.
길이 매우 미끄럽습니다. 오늘의 산행은 나에게 어떤 것을 추억으로 남겨줄까!
조심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부상염려가 있어 아이젠을 착용하였습니다.
눈은 없었으나 나무에 맺힌 서리가 바람에 날리어 떨어져있는 모습이
얼핏 보아 흰눈 같기도 하지만 빙수를 만들기 위한 얼음가루가 뿌려진
모습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겁니다.
날카로운 날이 선 모양새가 정겹지는 않았습니다.
동봉에 다다르니 정상비가 자그마하게 있습니다.
팔공산의 정상은 비로봉인데 이곳도 군사시설로 접근이 허용되지
않아 유감스러웠습니다. 무등산도 그랬듯이!
아무래도 산악인이 결집하여 정상 되찾기 운동이라도 전개하여야겠습니다.
광주와 대구가 함께 뭉친다면 못 할일이 없지 않을 까요?
그런데 팔공산이 무등산보다 약10여미터 더 높더군요.
대도시 산중 무등산이 제일 높은 것으로 알았던 것은 저의 무지였습니다.
아무튼 두 곳은 이미 태고 때부터 라이벌로 탄생되었음을 재인식 하였습니다.
오늘 산행의 날머리는 갓바위입니다.
팔공산의 상징이지요!
산악회의 예정된 코스는 신령재에서 우회전으로 하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임원분들의 양해와 조건하에 저 혼자만의 산행코스가 되었습니다.
소영웅 주의적인 측면이라 말씀하셔도 좋습니다만 저에겐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이렇게라도 갓바위 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앞서가는 길에 발자국이 없어 길을 헤매기를 수회 반복하였습니다.
좋다는 기암괴석도 내 눈엔 없습니다. 작은 공포만은 나를 떠나지 않았고!
능선길에 서리안개(?)로 인한 화이트아웃 현상으로 100미터 밖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허연 사슴뿔과 바위길에 내려앉은 얼음가루입니다.
떨어진 가루는 녹용의 그것으로...
착시적으로 보였는데 코펠이라도 있었다면 끓여 마셨을지도 모릅니다.
정상등산로 표지기 23번 위치에서는 불현듯 우측으로 황금의 땅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능선을 기준으로 북측은 은색의 나라! 남측은 황금의 나라?
눈에 힘주어 들여다보니 그곳은 골프장이었습니다. 황금잔디였습니다!
도립공원에 18홀이 넘게 보이는 골프장? 희귀하고 어색한 잘못된 실상입니다.
이해를 못 한 채로 지나쳤기에 제가 헛것을 보았기를 희망합니다.
이젠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불경소리에 희망을 태워 부처님께 보냈습니다.
내리막에서 힘을 받아 된비알을 오르고 이제는 다리가 무겁게 느껴질 무렵
일순 아주 굉장한 모습에 소름끼치며 놀랐습니다.
작은 인수봉 모양새의 우뚝한 원뿔 모양의 봉우리가 서리안개에 둘러싸인 채
상고대로 치장한 흰색의 나무들로 멋지게 아프리케한 그 신비한 자태는
딸내미에게 카메라를 양보 하고 온 오늘의 커다란 아쉬움입니다.
그것은 갓바위를 품고 있는 관봉이었습니다.
그 형이상학적인 경이로운 모습은 제 글로서는 더 이상 표현 불가능합니다.
관봉 갓바위절(이름을 기억치 못함)에서 늦은 점심공양을 하였습니다.
건더기 없는 국과 짠지 깍두기 세 개에 흰 쌀밥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도선사, 봉정암등지에서 경험한 것과는 다르더군요!
드디어 오늘에 목적지 갓바위에 도달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보이는 나무들에 그것은 상고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벚꽃이었습니다. 정말로 벚꽃으로 보였습니다.
아! 갓바위 부처님의 조화로다! 신비로다!
소원을 빌었습니다. 세 가지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소원만을 빌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더군요!
오늘 제가 부처님께 다가갔었던 길이 고행이었던 만큼, 자비로우신 분께서
두 가지 소원은 들어 주시겠지요?
-자유인-
-2006년1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