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겨울 산행기
2008년 2월 3일 : 토왕성폭포 빙벽등반대회 관람 및 울산바위 등정
2월 4일 : 설악동-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희운각-천불동-설악동
약 100일 전 1무 2박 3일 일정으로 나는 설악의 가을 정취를 듬뿍 즐기고 왔다.
그때 비룡폭포에 올랐을 적 좀더 위로가면 320M 높이의 거대한 토왕성폭포의
위용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일년에 딱 한 번 개최되는 빙벽등반대회기간인 2일간만 정당한 출입이
허용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을 기다려왔고 오늘 그 소망을 이룬 것이다.
나와 같은 기다림을 지녔던 분이 많았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하였는데 그 분들은
대체로 커다란 카메라로 현장을 담았고 배낭에는 피켈을 달고 있어 전문성을 나타냈다.
상, 중 ,하 3단으로 이루어진 폭포의 상, 중단 부는 수직으로 낙하하는 모습으로
엄청난 빙벽을 이룬 채 꽁꽁얼어 시간이 정지되어 있었으며 가장기다란 하단 부는 얼어
있는 사면위로 눈이 깊게 쌓여있었고 동앗줄이 설치되어 찾는 이들에게 오르고 내리는
데 있어 편의를 제공하여 주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설동이 여기저기 꾸며져 있었고 간밤을 지낸 대회참가자들에 잠자리
흔적과 침대와 부엌찬장까지 빚어놓은 벼랑아래 설동은 무척 멋져보였으며
약 70여 미터쯤 돼 보이는 높이의 빙벽을 안전과 지식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대회참가자가 오를 때 아래로는 피켈에 의해 얼음이 부서져 그 조각들은 추락할
망정 선수들에 안전은 여러모로 잘 확보되어 있었다. 그들이 극복하는 높이가 나와 같은
일반 트래커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크라이머들에 위용에 조금은 위축되었지만,
진귀한 시간에 고귀한 폭포와 각별한 크라이머들을 대할 수 있었슴에 행복한 날이었다.
등산이라는 것이 본래 남의 이목을 마음에 담고 즐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이 보아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다면, 누가 목숨을 담보로 단애를 오르고
빙벽이나 에베레스트를 오르겠는가? 크라이머들을 평가하기로 했다.
관람을 마치고 설악동에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니 날씨가 무척이나 깨끗하고 봉우리
마다엔 눈 씌워진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음양이 확실하여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 더 설악에 머물기로 결정하고는 울산바위에 올랐다.
사실 머물다 갈 준비도 해왔기 때문에 나는 가볍게 결정할 수 있었지만 아내에게
결재받기란 결코 쉽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눈길을 돌아다니다가 소공원안에 위치한 검소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테라스로
나가니 눈 앞 노적봉에는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주변은 적막이 감돌기 시작했다.
커튼을 열어두고 열린음악회 시청 후 여유 있게 식사하려 밖으로 나갔더니 모든 식당이
영업마감한게 아닌가! 성수기 때만 설악동을 찾아왔었기에 비수기 설악동문화를 몰라
치러야할 댓가는 혹독하였다. 터벅터벅 걸어서 설악 3지구로 걸어가는데 깜깜해진
밤하늘에는 별들은 무수히 빛나건만 여기저기 하늘을 뒤져봐도 달은 보이지 않아 월하의
눈길을 걷는 낭만적 정취를 맛보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별들이라도 담아가려 카메라를
아무리 들이대도 사진으로 남겨지지 않았다.
무게가 버거워 집에 두고 온 큰 카메라가 아쉬웠지만 후회는 없다.
다음 날 5시 알람에 의해 기상하여 서둘러 간편한 요기를 하고 산행에 나선 여명의
한기는 차겁지만 그래도 상쾌하였고 비선대 출입통제소를 지날 때 전광판 시계는
6시 3분이라고 현재시간을 알려주었다.
헤드렌턴이 비쳐주는 길을 따라 된비알 올라서 아침의 신성한 푸른빛이 감돌 즈음
산등성에 오르니 사위는 서서히 밝아왔으며 집선봉 위로는 지난 밤 능선 뒤로 숨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그믐달이 별 두개를 거느리고 짠하고 등장하였다.
헌데, 달님에 영원한 스토커는 금성만이 아니었던가?
왠 별이 하나 더 붙었을까?
이젠 삼각관계가 되었나 싶은 우스운 생각만이 잠시 스쳐 지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글을 쓰기 전 내가 촬영한 사진과 유사한 커다란 사진이 게재된 신문기사를
보고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금성과 그믐달 사이로 꼭지 점을 이루었던 새로운 별이 목성이었다는 것과 내 사진에는
신문에 게재된 장면보다 더욱 멋지고 뚜렷하게 목성이 담겨졌다는 발견이었다.
“이 우주쑈는 아주 드문 현상으로 금성과 목성이 최근거리에 접했을 때 이루어지는
고귀한 현상이라 하니 산행기를 읽으신 분들은 사진도 보아주시기 바란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 내게 있었다는 것은 기쁨이며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 하겠다.
잠시 뒤 나는 산등성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고 심호흡 후 설악산이 선사하는
감동과 흥분을 지니고 두리번거리며 다시 걷기를 재촉하였다.
살다보면 춥다는 것이 다행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것!
세상사 모두가 새옹지마 아니던가? 오늘은 날씨가 주는 양면성을 산에서 경험하였다.
깊게 쌓인 눈이 얼었기에 스틱과 아이젠이 제 기능을 다하여 걷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
좋았고 추운 곳에서는 밧데리 소모가 급격하여 가슴속 주머니에 카메라를 넣고 다니다가
촬영을 요할 땐 꺼내어 찍기를 반복하여하니 번거로움이 불편하였고,
손에는 평상시 등산용장갑을 그 위로는 방한장갑을 착용하였는데 두터움 때문인지
셔터가 눌려지지 않아 일일이 벗고 눌러야만 하는 불편함은 나빴다.
여러모로 수고하며 이번 산행에서 담아온 사진은 나에게 있어 더욱 소중하다 하겠다.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지만 졸작일망정 사진은 남겠지 하는 생각으로 애써 많이 찍었다.
외로이 걷다가 마등령을 지나 신선봉에 이르면서부터 반대편에서 오시는 산꾼을 드물게
만나 가벼운 인사 나누었는데 희운각에 이르는 동안 나처럼 개인산행 하시는 각기 네
분과 아주머니 두 분과 아저씨 한 분으로 구성된 한 팀만을 조우하였다.
이제 내가 걸었던 길 주변을 말해보자.
마등령에서는 속초시내와 화채봉이 지척이었고 얼어있는 영랑호는 눈 덮인 모습이 확연히
눈에 찾으며 5.1KM구간 공룡능선에는 엄청난 눈이 쌓여 있었으며 비선대 식당주인은
올겨울 총 적설량이 2M는 족히 넘는다 하였다.
내외 설악의 설경과 능선 봉우리마다는 우리나라의 여타산과 설악의 차이만큼이나
독특한 설경을 연출하였으며 그지없이 맑은 하늘에는 티끌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아래
지평선과 수평선을 이루는 곳까지 끝없이 보이는 시정거리였으며 희미한 지구 끝자락에는
엷은 테두리가 무지개처럼 농도가 다른 빛으로 층층으로 둥글게 둘려져 있었다.
웅대한 경치에 기분은 좋아지고 백설에 반사되는 빛은 얼마나 눈 시렸던지 썬그라스를
착용치 않으면 설맹이라도 될 듯했으며 푸르른 하늘빛은 이 것이 정녕하늘이구나 싶은
마음이 일어나 가슴 시렸으며 찬바람에는 볼 시렸는데 그중 가장 시렸던 것은 심연에서
불쑥 솟아오른 아주 어릴 적 내 어머니가 남겨주신 추억하나였는데 사무치도록 시려워
뼈 속까지 저며 왔다.
모처럼 친정 나들이 나섰을 때 돌아오는 길 차비를 아껴야 하신다며 추운 겨울날 발이
깊게 빠지는 눈 덮인 들을 지나 얼은 냇가를 건너고 높은 고개를 넘었을 때 나는
투정부렸고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점방에서 사탕을 사 주셨던 것이다.
엄동설한에 그토록 힘들게 걸어서 아끼신 값진 돈으로!
그 시절은 정말 추웠기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오늘날 추위는 겨울도 아니다.
하늘 가까운 길을 걷노라니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내안에 나는 그리도 그리웠나 보다.
오늘은! 오늘은! 여러모로 오감시린 날이다.
걷다가 지정된 길을 조금 벗어나 우정 조망 좋은 곳을 찾아 스며들었더니 다양한
관점과 시적인 감흥이 일어 어쩔 수 없는 나의 감성은 마치 천상에 오른 듯 하였고,
행운으로 만난 절경을 두고 떠날 수 없어 다시금 자리 잡아 머무니 역시 나는 나였다.
이처럼 혼자가 되었을 때 철저히 자유롭고 실질적 고뇌는 없어지며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 조차 깨달을 필요도 없는 무한한 기쁨을 얻기 때문에 고독이 친구인 것이다.
한편으로 급사면 눈길을 오를 때는 스틱 중간부분을 잡고 피켈로 사용하여 찍으면서
네발로 올라야만 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으며 바둥바둥거려도 계속 미끄러져 몸이
위로 오르지 않는 힘들었던 구간도 몇 군데나 있었고 평상시 길 아닌 곳에 길이 만들어져
있기도 했었다. 지난가을 내가 걸었던 길과는 조건이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나는 내 즐거움을 얻으려 산행 하였음에도 마치 역경을 이겨낸 용사에 대한 보상을
받아내려는 듯 따뜻한 컵라면을 맛나게 먹을 요량을 품고 공룡을 내려서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였건만 야속하게도 매점 문이 굳게 잠겨있고 대피소는 냉기만 가득하였다.
사막에 오아시스의 꿈이 사라진 것이다. 내가본 것이 신기루는 아닐진데 허탈하였다.
아마도 월요일이고 산행객이 적어 가족을 보러갔겠지 하는 인간적 측면으로 다소간
이해는 되었지만 아무래도 이와 같은 특별한 시설은 사유적인 것일망정 소명의식을 갖고
의무적으로 이해타산을 떠나 모든 시간 정상적으로 운영해야 옳지 않겠나 싶었다.
반면에 불과 4일전 입산허가가 났다는 험난한 공룡길을 처음으로 러셀하신 분들에게
참으로 감사한 마음을 오래오래 지니기로 다짐하였다.
보람은 있었겠지만 생각할수록 참으로 고맙고 대단한 분들이다.
길을 찾기도 길을 내기도 얼마나 어려운 공룡의 모든 겨울 여건인가 말이다.
구체적으로 내가 지나온 길 상태를 말한다면,
발길에 다듬어진 발자취는 분명히 있지만 사람이 방금 지나온 자리에도 발자국은
남겨지지 않았다. 강한 바람이 눈을 몰고 와 지나간 자국을 바로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발자취마저 없었다면 길은 없는 것이고 길이 없었다면 필경 입산통제를 당하여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금번 산행의 감동을 경험할 수 없었겠기에 그렇다.
희운각에서 양폭으로 내려오는 길 급사면은 엉덩이 눈썰매를 즐긴 흔적이 뚜렷하였고
비선대에 이르기까지에 천불동 설경 또한 공룡과 같이 놓쳐서는 안 될 겨울진경의 연속
이었다. 따스한 햇살 받아 눈부신 첨봉에 부분, 부분 덧 씌워진 하얀 눈과 드리워진 옆
그림자가 함께 연출하는 음영의 조화는 눈 많이 내린 겨울이 아니면 절대 못 볼 풍경
이었으며 굽이진 계곡과 솟아오른 바위는 눈 덮여 기이한 모습들을 연출하기에 독특한
겨울에 계곡미를 감상할 수 있어 좋았고 하얀포말 일으키던 천당폭포는 흐름이 정지된 채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었다.
설악산이라는 이름자체가 눈 덮인 신령스러운 큰 산이라는 이름 아니던가!
이름에 맞게 겨울 설악산이 보여주는 풍경이 진경이었다.
단애에는 눈마저 비켜갔지만 어쩌다 쭉 빠진 첨봉에 하얀 망사드래스를 입혀 놓은
듯한 빼어난 자태는 몸매고와 아름다운 여인에 못지않은 요염함마저 엿보이기도
하였는데 나는 11시간이라는 노정에서 재 충전해온 설악의 정기만으로 몇 달간은
견딜 만큼 에너지가 충만하였다.
비선대에서 소공원에 이르기까지의 솔밭사이 오~설길은 또 어떠하던가!
온종일을 걸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영화 속 설경을 배경으로 젊은 연인들이 미끄러운
눈길지치며 희희낙락 노니는 장면은 눈 시리게 부럽도록 보기 좋았고 하산 길 끝자락에서
거대한 배낭을 짊어지고 계신분이 있어 물었더니 대피소는 싫고 산은 좋아 대피소
근처에 설동을 짓고 3박 4일간을 머물다 하산하는 길이라는데 올라갈 때 배낭무게가
30KG 하산할 때는 먹을 것을 비워 20KG이라는데 나는 그런 짐 지고 몇 발자국이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아마도 된비알은 한 걸음도 오르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산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크라이머도 있고, 트래커도 있고, 피크닉으로 즐기시는 분과 그저 하이킹만으로
만족하는 연인과 아예 산에서 숙식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지만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은 없는 것이며 등산을 스포츠라고도 하나 문서화된 규칙도 없다.
하지만 가끔씩 볼썽사나운 장면들을 목격 하기도 한다.
울산바위아래에 버려진 먹거리 산행쓰레기를 보고 얼마나 불쾌했던지!
최소한 산을 찾는 사람으로서 기본적 상식만은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자격증을 필요로 하거나 단속받는 시대를 우리가 스스로 불러서는 안 되겠기에
이제 산행문화를 나부터 계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 산행이었다.
남녘에서 봄이 온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입춘이 어제다.
아무래도 겨울이 찌꺼기가 되기 전에 한 번 더 겨울산에 올라야하겠다.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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