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산행기
2008년 2월 13일 성판악-진달래대피소-성판악
14일 어리목-윗세오름-영실
15일 성판악-진달래대피소-백록담-관음사
한라산에는 대설특보가 내려진 상태...
대설이 빚어냈을 한라산 설경에 대한 기대와 순조롭지 않을 산행의 염려가 교차한
채로 설레임 안은 채 어제 밤은 늦게 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13일 오전 7시 김포를 이륙한 비행기는 한 시간 뒤 제주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고.
나르는 하늘 길에서 장엄한 일출을 바라보며 맑은 날씨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다도해 건너 제주섬 인근에 다다르니 하늘아래는 온통 두터운 구름층으로
한라산 기상이 수상쩍었고, 9시 반 성판악 들머리에 들어섰을 때 대설기상특보는
대설주의보로 한 단계 내려진 상태였으며 창공에서는 가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폭설이 내렸고 게다가 더 내려지는 고운 눈으로 한결 더 아름다운 설경이 빚어지는
생생한 현장 오솔길을 거슬러 오르나니 길섶 설경에 지루하거나 힘들다는 여념이 없다.
위로 오를수록 순백의 순도는 더 높아지고 설경 또한 점점 더 좋아지니 나는 설국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시간감각 하나 없이 걷기만 하였었는데 어느덧 진달래 대피소에
다다랐고 봄이면 착한 꽃 진달래가 만발할 이곳에서 만개한 겨울 설화의 미모에 빠져
들다가 정신 차려 백록담으로 가는 길은 이미 차단되어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하였다.
관리소 위 백록담으로 가는 길을 결의를 갖고 덩그러니 쳐다보니 백록담으로 가라해도
오늘 같은 날 나는 결코 가지 않을 길이었다...
그동안 경외의 대상이었던 겨울한라산을 매력적인 감상의 자연으로 찾아왔건만
엄격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하는 한라산의 강풍이 지나는 싸늘한 설원에는 감히 도전할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깊은 눈이 쌓여있었고 그 위엔 발걸음 지난 흔적조차 전혀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기상특보 상태 하에서 모두가 현명한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그래도 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오는 발걸음은 백록담을 지나지 못한 아쉬움으로 너무나
무거웠다. 그러나 이번 겨울 내내 10번이나 한라산을 오르셨다는 회장님께서 오늘에 접한
설경이 가장 아름다운 실시간의 설경이었다 라는 말씀이 있어 다소간 위로는 되었다.
이른 오후 4시 30분경 호텔첵크인하고 쉬다가 식사 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니
셀레임으로 지난 밤 설친 잠이 한꺼번에 몰려와 22시경 이내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숙면으로 기분 좋아진 둘째 날은 대설주의보는 해제된 개인날씨였다.
아침 9시경 어리목을 들머리로 영실을 날머리로 하는 코스로 산행하였는데 설경으로만
친다면 한라산 제일의 산행코스라는 명성을 확인하는 산행이었다.
어제내린 눈으로 신선한 기운이 맴도는 설비알을 한동안치고 나서 드넓은 광야를
지났는데 쌓인 눈들이 바람에 날려 안개 낀 듯 온통 희뿌였기만 했다.
벌판을 건너는 동안 사뿐사뿐 얼은 눈밭을 내딛는 발아래에서 사각사각 밟히는
소리는 바람소리와 함께 좋은 느낌으로 들려와 지루함이 없었다.
이따금 까마귀는 높은 곳에서 더 높이 날아가고!
윗새오름 대피소에 다다라 여장을 정비하고, 한동안 담소 나누며 함께 오른 재주산꾼
아주머니가 건네주신 따스한 컵라면과 커피로 체온과 에너지를 좋은 상태로 복귀시킨
후 아주머니 일행은 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갔고 나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예정된 날머리 영실로 진행하였다.
대피소를 뒤로한 산행길은 다시 광활한 설원을 지나야했고 구상나무 군락 1KM여를
지나는 구간은 그야말로 설경이 비경이었다.
산을 보는데 있어 나무와 숲을 구분하여 보기도 하지만 이곳은!
뭐랄까?
그러니까!
설숲이 엄청난 절경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최상의 하얀 풍경을 보았고 또 감동했었다고 기록한다.
병풍바위를 지나면서는 한라산의 또 다른 면을 보았는데 거벽의 위용은 드물게 눈이
묻혀있어 조금은 부드럽게 보여 졌다. 모든 설경과 간간히 열리는 하늘창문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흡족한 마음으로 곳곳에서 머물기를 반복하다 게으르게 하산하였고
조금은 늦은 중식 후 약천사와 그 밖의 쇼핑쎈타를 들려본 후 호텔로 돌아왔다.
금번 패키지 산행에 동참하신 분들은 총 31명으로 삼삼오오 단체로 오셨거나
부부가 함께 짝지어 오신 분들로 구성되었고 나만이 혼자였다.
오늘에 있었던 산행의 만족감과 내일 떠난다는 아쉬움에 바닷가 횟집으로 향하셨고
나는 뒤늦게 호텔 가까운 밤바다를 찾아 정취에 젖어 거닐다 돌아와 잠들었다.
셋째 날 모두들 서울로 귀경하고 나는 성판악으로 향했다.
휴게소에서 요기를 하고 07시경 혈혈단신으로 치고 오르며 두리번거렸는데 길섶
설경이 그제보다는 아름다움이 훨씬 덜해졌다는 느낌을 받으며 진달래 대피소에 다다랐다.
아무래도 바람이 나목에 쌓인 눈들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기에 그랬나보다.
벚꽃보다 아름다운 눈꽃은 너무나 아름답기에 그 생명도 목숨이 짧아 허무한 벚꽃
에 비해서도 훨씬 더 짧아 정녕 찰나에 피고 지는 미학으로 환상의 것 이련가?
미인박명이라는 말은 가녀린 꽃에도 해당된다는 실감이 내 가슴에 스며들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는 불가의 지침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인 것이다
대피소안에서 벗고 올라오던 방풍쟈켓을 껴입는 등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그대로
백록담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실제적 등반의 시작이라는 실감을 느끼며 이곳 구상나무
군락에 피어난 설경에 심취하였는데 윗새오름 쪽보다는 듣던 대로 성판악 쪽에 적설량이
월등히 많다는 것을 쉽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산행길이었으며 1800M 고지를 지날
즈음부터는 강풍이 더 강해지고 그에 실려와 볼에 닫는 가냘픈 눈발은 몹시 따가워
고개들 수 없었으며 1900M 고지를 지나면서는 몸을 최대한 낮춰야만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위로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 두발로 섰을 때는 카메라를 든 손과 지탱하는 발과
몸이 바람에 흔들려 모든 것이 고정되지는 않았고 사방은 화이트아웃현상으로 50M
전방도 무엇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조차 구별되지 않았다.
하늘에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큼 높다하여 지어진 이름 겨레의 영산 한라산!
신선들이 하얀 사슴이 타고 노닌다하여 붙여진 이름 백록담!
나는 은하수도 하얀 사슴도 신선어른도 어디 계신지 어떻게 계신지 찾아볼 수는 없었다.
벼르고 별러서 힘겹게 찾아 오른 1950M 한라산 정상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그냥 내려오기는 너무나 섭섭해 그럴 수 없었다.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기상상태가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머물 작정인데
이 강풍과 추위를 내가 지참한 온도계는 추위에 얼어 영하 25도를 가리키고...
바깥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실내라면 가능할 것이기에 한라산정상안내소로 무단 침입하였다.
하지만 직원은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라며 막무가내로 나가라하신다.
나는 실질적 비즈니스맨이 아니던가?
담소 나누고 준비한 행동식을 함께 먹기도 하고 또 대접해 주는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보면 오고가는 산행객들이 벌벌 떨면서도 기념사진 담는 한결같은 모습이
�임없이 지속적으로 보였다. 바람 없는 곳 난롯가에서 따스한 불 쬐는 상대적
희열에 나는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했는데 한 시간 여를 그렇게 기다렸건만 날씨는
끝내 좋아질 낌새가 없다.
더 이상 폐를 끼친다는 미안함도 있어 결국 백록담 속내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관음사로 강풍 맞으며 서운함을 안고 내려서기 시작했다.
못 보았기에 다시 찾아야 한다는 명분만은 꼭 가슴에 묻어두고서 말이다.
엉덩이로 미끄럼도 타고 겨울풍경 유람도 하면서 시나브로 하산하는 도중엔 KBS
영상 취재팀도 만나고, 아름답기로 설악산 천불동계곡과 지리산 칠선계곡과 함께
국내 3대 미곡으로 꼽혀지는 잠자는 탐라계곡을 지나는 구간은 바람도 없이 너무나
적막해 버들강아지 여물고 있는 여린 가지에 내려앉은 아기눈은 내 발걸음 소리에도
살폿이 내려 낮을 것만 같아 살금살금 걸음으로 무탈하게 관음사로 하산했다.
나는 택시타기 전 간간히 떠가는 조각구름 새겨진 파란 하늘을 고개 들어 우러러보고
먼 바다를 동경어린 마음으로 보았으며 고개 돌려 머물렀던 한라산 정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높은 산은 언제나 친한 두터운 베일 쓴 구름과 노니느라 내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경외하는 산의 좋은 모습 담으려 크고 작은 카메라를 두 개를 짊어진 채 산행
하면서 800여 컷을 담았고 3일간 근 50km를 걸었는데 이토록 철저히 외면하다니...쳇!
괜시리 사치스런 고생을 하였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며들자 아이젠케이블에 조여졌던
양발 모두 다 양 가쪽에 튀어난 부분에 통증이 느껴왔는데 물집이 잡힌 것이다.
산이 나를 외면하면 바다로 가지 뭐 오기가 인다.
요산요수 현명한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군자도 훌륭하고 지자도 훌륭한 것 나는 용두암으로 갔다.
아내와도 왔었던 곳으로 추억이 머무는 자린데 어제 밤 분위기와는 밤과 낮 차이만큼
달랐다. 바다는 푸르고 하늘은 파랗고 파란 하늘엔 흰 구름 흘러가고 푸른 바다엔
일엽편주 둥둥 떠 있어 바다는 공백이 아니고 열린 구름창으로 내려진 햇살은 파도에
반사되어 금속성 빛으로 반짝거리고 하늘과 땅 사이 창공에는 비행기가 드물지 않게
날아 지나기도 하는데 제주 갈매기는 그에 질세라 멋진 날개 짓으로 맵시를 뽐내고
바위엔 거센 바람에 넘실대는 파도가 줄기차게 몰려와 부딪쳐 하얀 포말 일으키는 것이
바다의 신 포세이돈께서 아무래도 무언가 마뜩치 않은 듯 성내는 모양새다.
바닷가 안부엔 해녀들이 드럼통에 불 피워 놓고 물질로 올려진 해삼과 전복을 옹기종기
모여 판매 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나는 점 하나 되어 해삼과 �은 문어를
주문하고는 사람 사는 정겨움에 빠져 캔맥주 하나 더 청하였다.
이른 취기에 행복의 무게를 가득 짊어지니 금세 내 얼굴은 제주 도로변에 피어난
동백꽃처럼 붉어졌고 집으로 오는 하늘에서는 비행기 창밖으로 생명의 끈을 좀처럼
놓지 않는 황혼을 보며 줄곧 왔는데 결국은 하늘도 내 얼굴과 같이...
동백과 같이 붉게 물들이다 점차 어두워지더니 끝내는 어둠을 남기고 사라지는 모습은
내게 슬픔과 함께 열심히 후회 없도록 살라는 교훈으로 받아졌다.
돌아오니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동안 아지트를 사수하려한다.
본부가 튼튼해야 원정도 떠날 수 있으니 말이다.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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