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람
산은 우리를 필요치 않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무언가 부족한 부류의 사람에겐 산이 필요합니다.
자연으로부터 양분을 얻어야만 무미건조한 삶이 윤택해지기에 그렇습니다.
산을 찾아 한려수도를 찾아 떠나온 날은 6일 밤입니다.
부천시외버스터미날에서 마산행 23시10분발 심야버스로 출발했고요
마산시외버스터미날에서 하차하여 열려있는 김밥 집에서 새벽요기를 하고
도솔사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학이 나르는 형세와 같다하여 지어진 이름의 무학산은 해발767미터이고 100대 명산입니다.
이른 새벽임에도 체조하시는 노인 몇 분을 뵐 수 있었고 휘~익 휘~익 새벽을 여는
이름 모를 새 소리와 계곡에서 여울지는 물소리는 상쾌하게 들려왔으며
조각난 공산반월은 나아갈 길을 희미하게 비추어 주었습니다.
뒤를 보면 마산시내 새벽녘 야경과 항구의 불빛이 초롱초롱합니다.
정상부근 약300미터 구간은 폭3미터 넓이로 잘 놓여진 나무 계단길이 아주
여유로웠고 렌턴에 비치는 노란 가장자리 색은 안전을 배려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정상에는 어둠 속에서도 힘차게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하산은 서마지기로해서 달맞이 고개를 경유 서원곡으로 하였는데 달맞이
부근에서부터는 이슬을 품은 상큼한 진달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서원곡 계곡 일대에는 아름 들이 벚나무가 휘황찬란하게 꽃을 피워내 주변을
밝게 조명하고 있었는데 그 규모나 아름다움이 실로 대단하였으며
무학산 산행시간은 여유로운 두 시간 이었습니다.
김해로 이동해서 44회 군항제가 진행되는 모습을 살짝 엿보기로 했습니다.
가로수는 모두가 벚나무고 산등성과 마을 어귀도 온통 벚나무로 일관되었으며
이런 풍경은 창원까지도 이어진다 하는데 아무래도 저에겐 무학산 서원곡 벚꽃이
훨씬 더 정서에 맞습니다.
이제는 배둔을 거쳐 옥천사에 당도하여 연화산에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연화산은 산의 형상이 연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100대 명산입니다.
오르는 동안 인공으로 조성된 계단이나 밧줄들은 눈에 띄지 않았으며 꽃과 어린
녹색들만으로 정상석 마저도 없는 자연친화적인 산이며 높이는 528미터 입니다.
그런데 알록달록한 꽃들만이 향기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길섶의 작고여린 풀잎이 바람에 일렁이는 자리마다 연록 빛 향기로 물들입니다.
봄이 이처럼 무르익을수록 세상은 싱싱한 향기로 채워지는 것이지요.
부처님 진신사리가 보관 되여 있다는 적멸보궁을 거쳐 하산 하는 데는
여유로운 세 시간이 소요되었고요 옥천사 초입에는 공룡발자국 전시회장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고성을 거쳐 통영에서 시내버스로 이동 봉평동 용화사에 도착한 시간은 17시입니다.
지금부터는 높이 461미터 미륵산에 오른 이야기입니다.
미륵산은 바다에 깊이 뿌리를 내린 섬에 위치하고 있으며 통영의 앞산입니다.
오르는데 약40분, 내리는데 약30분이 소요되는 짧은 산행지지만 정상에서
바라본 시야는 장쾌하였습니다. 사량도지리산이 근거리로 보이고 햇빛이 반사되는
서쪽바다는 눈 시립니다. 북으로는 통영시내와 건너온 다리가 한 눈에 들어왔으며
사방으로 보이는 모두가 시원한 것이 섬에 떠있는 산이 더 산 같았다고 할 까요!
일몰이 유명하다는 곳인데 일정상 그대로 하산하였습니다.
하루에 세 곳의 명산을 쫓아 다니다보니 매우 허기져 감자탕 2인분에 공기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는 진주에서 숙박하였는데 노곤한 나그네는
꿈도 없이 깊은 단잠을 이루었습니다.
다음날 8일 도도히 흐르는 남강변을 10여분 산책하다 남해를 거쳐 보리암에
당도 하였습니다. 하동에서 아름다운 남해대교를 거쳐 입성한 커다란 섬 남해는
꽃의 향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물빛과 초입부터 만개한 벚꽃들은
보물섬 남해 전체를 휘감고 있었고 벚꽃 축제의 장소로 과연 진해가 타당한가를
나에게 묻는 듯했습니다.
보리암은 잘 아시지요? 기도 처로 또한 일출 감상지로 유명한 이곳은
100대 명산 금산에 자리하고 있잖아요! 산의 높이는 681미터입니다.
정상에 있는 망대바위에서의 조망은 실로 장쾌하였으며 미륵산 정상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우월했습니다. 바다와 기암괴석이 조화로이 어우러져 있는데 특히 보리암이
위치한 주변 곳곳에는 옮겨 다니며 보는 각도에 따라 형세가 달리보이는 바위가 많았고
내려다보이는 바다에는 징검다리처럼 솟아오른 섬들로 주변을 치장하고 있어
보물섬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 하겠습니다. 불공에 효험이 있는 곳이라 해서 그런지
새로이 안착된 불상 앞에서 기도하시는 불자들의 그 정신이 매우 강인해 보였습니다.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진동하는 지린 냄새에 저는 불과 수초도
견뎌낼 수 없었는데 그분들은 아랑곳없이 기도에 열중하고 계셨습니다.
복곡주차장까지는 차량으로 당도하였고 이어지는 셔틀버스로 보리암까지도 걷지 않고
오를 수도 있습니다만 한 시간 걸려 그냥 걸었으며 내려올 땐 셔틀버스에 의지하였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금산을 찾은 방법은 산행이라기보다는 탐방이라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위해 남해 서상 항에서 페리호에 승선하였습니다.
서상항에는 조각배들이 새벽녘에 돌아와 일렁이는 물결에 몸을 맡기고
따라 흔들리며 낯 잠에 취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이제 하얀 포말을 뿜어대며 준비운동을 마친 페리는 서서히 여수를 향해 나아갑니다.
니체가 일갈 하였지요?
저 강들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바다로 흘러가지 않는가!
결국 바다를 삼라만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던가요?
물속 풍경을 그려보기도 하고 선과 면이 만나는 섬들을 줄곧 바라보며 이번 외출에
대하여 어떻게 글로남길 것인가를 궁리도 하다보니 이윽고 여수항이 가까워졌고
초입에서는 찡하게 예쁜 섬 오동도가 넘실대는 파도와 장난치고 있었으며
모범식당으로 지정된 구백식당에서의 맛난 갈치구이는 맛의 고장에서
점심을 갖기 위하여 배고픔을 참아낸 나그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이곳 여수 영취산은 진달래꽃 축제지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100대 명산은 아니며 산 높이는 510미터 입니다.
흥국사를 산행들머리로 하였는데 많은 상춘객으로 매우 부산하여 사찰에서
느껴왔던 경건함이 없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이 하산중인데 소수의
사람들은 저처럼 늦게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지역민으로 보였습니다.
언제나 보일까? 기대했던 진달래는 봉우재에서부터 눈에 들어왔습니다.
온통 진달래 밭인데 멀리서 봤을 때엔 색이 고왔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이미 한창이
지나 대부분이 시들기 시작하였고 정상부근의 일부만이 싱싱하였기에
게으른 자에게 기쁨은 없었습니다.
꽃들은 피어나는 모습과 지는 모습이 제각각입니다.
벚꽃과 같은 녀석은 화끈하게 피었다가 시드는 줄 모르게 때늦은 눈보라처럼
사뿐히 흩날려 사라지는가 하면 진달래류는 시들어 뭉개질 때 까지 가지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합니다.
여하튼 사람으로 태어나 저 꽃들처럼 죽어도 좋을 만큼 활짝 피어본적이
내 인생에 있었는지를 자문해 보았는데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는지라 더 살아야한다는 당위성을 스스로 부여 받았습니다.
꽃과 함께한 이번 외출에서 일부 철모른 동백의 빨간 모습도 볼 수 있었고 또
성미 급하게 눈처럼 녹아내린 벚꽃들도 보았으며
100대 명산 산행 과제 또한 83, 84, 85, 86회 차를 즐거움으로 마쳤습니다.
외롭고 고단한 이들이 그 신산함을 달래기 위하여 떠나는 나그네의 끝자리 남도
여수를 끝으로 자유로운 외출을 마치고 냄새나는 옷을 여수역 화장실에서 갈아
입는데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으나 그대로 진행하였고
열차 편을 이용 새마을호로 익산까지, 익산에서 용산까지는 KTX로 환승하여
파트너에게 돌아왔습니다.
한편으로 산행, 그리고 여행은 누구라도 대신해서 할 수 없고 슬픔이나 기쁨이
모두 다 스스로의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자유로운 외출을 할 수 있었음에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길 밤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였습니다.
수다 떨 것이 참 많은데 지루하시면 안 될 테니 간추려 외출 보고를 마칩니다.
- 자유인-
* 상세한 일정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4월6일 23시10분 부천시외버스터미날 심양우등 출발
4월7일 03시40분 마산시외버스터미날 도착 (보관함에 배낭을 두고 산행에 나섬)
04시10분 무학산 도솔사에서 산행시작
05시10분 무학산 정상도착
06시10분 서원곡날머리 도착
06시30분 진해행시외버스 760번 승차
07시20분 진해역 도착
08시30분 진해출발
09시10분 마산시외버스터미날 도착
09시30분 마산남부터미날 도착(택시이용 8,000원)
09시45분 고성행버스 출발
10시30분 배둔 버스터미널 도착
10시50분 옥천사경유 개천행 버스출발
11시30분 옥천사입구도착
15시00분 옥천사에서 고성행버스 승차
15시40분 고성시외버스터미날 도착
16시00분 고성시외버스터미날 출발
16시40분 통영시외버스터미날 도착 (배낭은 물품보관함에 두고감)
16시50분 용화사행 시내버스 승차
15시20분 용화사 도착
18시00분 미륵산 정상도착
18시30분 용화사에서 시내버스 승차
17시00분 통영시외버스터비날 도착
18시00분 통영시외버스터미날 출발
19시20분 진주시외버스터미날 도착
4월8일 07시20분 진주시외버스터미날 출발
08시35분 남해시외버스터미날 도착 (배낭은 물품보관함에 두고감)
08시55분 원천까지의 표를 구입하여 부산행버스에 승차함.
09시10분 기사에게 보리암간다 했더니 삼거리에서 내려줌
09시30분 지나는 차에 편승하여 복곡주차장 도착
10시30분 보리암주차장 도착
10시50분 금산 정상 도착
11시20분 복곡주차장 도착
12시00분 택시로이동 통영주차장에서 배낭을 찾아 같은 택시로 서상항 도착
(20,000원)
13시00분 페리호 서상항 출발
14시15분 여수항 입항
14시50분 여수역에서 차표 예매 후 배낭을 역무원실에 보관 의뢰함
15시15분 택시로 영취산 흥국사주차장 도착(12,000원)
16시10분 영취산 정상 도착
17시00분 흥국사주차장 도착
17시30분 여수역 도착
18시20분 새마을호 출발
20시40분 익산역 도착
21시02분 KTX익산 출발
22시50분 용산도착
* 이번 산행은 작년 말부터 계획하였던바 나름대로 인터넷과 전화 등으로
사전에 지역 교통편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한 후 계획하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