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산행기
좌석리-고치령-국망봉-비로봉-제1연화봉-연화봉-희방사-수철리
2008년 10월 26일(일요일)
바람이 맞고 싶어 소백산엘 갔다.
하늘이 높고 푸른 청명한 날씨에 산행 내내 원하던 대로 콧물이 줄줄 흐르도록
실컷 바람맞고 왔다. 이젠 바람생각은 한동안 내 것이 아닐 테다.
고치령까지 차가 오를 수 있었다는 걸 알고는 있었으나 누군가 못 간다고 크게
말하기에 침묵했다. 결과 좌석리에서부터 걷기는 시작되었고 고치령까지 5KM는
워밍업삼아 걷는 길이 되었다. 베타랑 회장님께서 들머리를 쉽게 찾지를 못하시고
고치령에 대한 현 상황을 모르신다는 게 다소 의아하게 느껴진 드문 날이었다.
소백산 8부 능선위로는 가을은 이미 지났고 겨울로 가고 있었다.
푸르디푸른 이파리를 무성히 달고 있었을 나무는 나뭇잎 모두를 떨친 빈가지에
처연한 나목이 되어 있었고 밟히는 것은 마른 그 잎새가 부서지는 소리로 시종
바스락 거렸으며 바람 지나는 능선에서는 한기마저 느껴졌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그런데 1차 하산로 국망봉에 당도하는 도중에 다리근육이 뭉쳐져 있다는 걸 자주
느꼈다. 아무래도 근래에 기후가 좋다는 이유로 조깅을 무리하게 즐긴 게 탈이다
강한 것은 부드러움에 진다고 하지 않는가?
매사 부드러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키로 다져보았다.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는 곳은 초원사 아래 삼괴정 주차장이다.
국망봉에서 뭉친 근육을 다소간 풀어주고 2차 하산로 비로봉을 지나쳐 오늘에
개인적 하산 목적지 희방사를 향하여 페이스를 유지하며 걸어 나가는데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어가노라니 뒤안길을 돌아보며 여러 생각 하였다.
그냥 목표한대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찾았던 바람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더욱 세차게 불어온다. 마치 이래도 바람이 좋으냐는 듯이 그렇게...
비로봉으로 오르는 발걸음은 자연적으로 바람에 갈지자로 엇갈렸고
한 단계, 한 단계 몸을 위로 올려가는 이런 상황은 연화봉까지 계속 이어졌다.
비탈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은 탄력을 받아 더욱 강해지기마련,
그래서 소백 주능선에는 강한생명 억새마저 높이 자라질 못해 최대한 몸을 낮춰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고 머리숙인 그 위로 씽씽 지나는 바람은 결이 되어 눈에
뚜렷이 보인다.
거칠 것 없이 시야확보가 가능한 장쾌한 산행 길로서 단연 소백이 으뜸인 이유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봉우리에 홀로선 이정표는 세찬 바람에 간간히 삐익~삐익~
비명을 질러 나는 그 소리에 진원지가 의아스러워 웬 소린가 놀랐었다.
연화봉에서 멋진 노을을 감상하고는 희방사로 하산하는데 해를 등지니 어둠이
내리는 속도가 빠르다. 깔닥고개에서 랜턴을 켜고 조심스레 내려서 등불이
온화한 희방사에는 18시경 닿았고 마음이 안도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수철리까지 내려가야 버스를 타고 소백을 빠져 영주로 나갈 수 있다.
이 길도 꽤나 지루하고 길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비로봉 이후 길은 초행길로 형편이 어떤지 예측 불가능하니 마음만
바빴으며 희방사에서부터 이어지는 어두운 포장길에 내려앉은 낙엽이 바람에
쓸리는 사르르 삭삭 소리와 내 발길에 부서지는 소리는 공포스러웠다.
낮이라면 가을 분위기를 한층 더 띄워줄 가을 소나타지만 밤이 되니 낙엽의
진실이 달랐던 것이다. 랜턴에 비춰지는 머리 위 초록빛 가을 솔잎에 빛은
하얗게 반사되어 되돌아오고,
귀신이 목덜미를 낚아 챌 듯한 이상한 기운이 내 주변을 감돌고...
하지만 어둠이 내린 적막강산을 혼자 걷는 묘한 매력? 사실 있었다.
밤의 소리와 밤의 빛에 머리칼이 쭈뼛하고 등골 오싹함의 연속이었지만 그랬다.
옛사람들은 고개 너머 밤마실을 내가 느꼈던 매력에 즐겨 다니셨을까?
아침에 시작하는 무박산행시 랜턴은 머지않아 아침이 밝아온다는 희망으로
시작 되지만 밤에 랜턴 길은 점점 어둠이 짙어진다는 공포감이 서린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앞으로 내 자신에게 겸손하도록 할 것이다.
영주로 나와 어설픈 잠을 자고 이번 나들이에 주 목적지 부석사에 다녀왔다.
부석사는 가을이 어떤 풍경이라는 걸 본보기라도 하듯이 가을 스러웠으며
습도가 낮아 짙푸른 하늘아래 고찰은 한반도 제일의 명당이라는 곳에 자리한
것이 의당하다는 정당성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자태가 우아하였으며
진입로 가로수는 온통 은행나무로 빛나는 노랑으로 채색되어 있고 또 채색되어
가고 있었는데 간간히 늘어선 활엽수 이파리들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봄은 생기로 가득하지만 가을은 그 빛이 아무리 화려해도 엄숙하였다.
예정했던 봉황산과 갈곶산 등산은 출입제한으로 포기해야 했기에 작은 아쉬움
하나 남겨왔지만 부석사와 그 주변 풍광이 절경이었고 빼어난 건축미를 갖춘
무량수전을 세세히 감상했으며 또한 진귀한 국가 보물 여럿을 보았고 인근
과수원에서 나무 가지에 매달린 사과를 내가 골라 빨갛게 잘 익은 두 알을 직접
따 맛나게 먹는 즐거움이 있었으며 주인 할머니께서 한 개를 덤으로 더 주시어
등짐에 넣어 왔고 흡족한 나들이 보람은 마음 가득히 담아왔다.
고치령 고개 산령각
근래에 세워 바람에 덜 지친 국망봉 정상석은 아직 깔끔하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과 주능선 억새는 바람에 고개들지 못하고 납짝 업드려 있었다.
언제 한 번 제대로 고개들 날 있을까?
저 유명한 칼바람 능선에서...
사는 곳이 소백이라는 이유로?
파아란 하늘아래 비로봉 정상석은 제법 연륜이 있어 보였다.
잎새 모두 떨궈간 바람이 빈가지라고 사정봐주지 않고 다시 찾아와 세차게 지나니 앙상한 가지는 비명지르고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은 몰인정한 바람에 빠르게 흘렀다 .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자리에 이정표는 내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기에 언제나 반갑다.
제2연화봉으로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줄기가 신비를 자아낸다.
연화봉 정상석에 눈부신 빛을 발하며 저무는 황혼
이 지점부터 희방사까지 1KM 구간은 매우 가파른 계단 길이다.
소백산 산행기록
부석사 일주문으로 다가서는 길가엔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는 데...
묘하게도 좌우 색상이 달랐다.
오른쪽 이파리들은 노랗게 이미 물들어 지친잎을 보내고 있었으나 좌측의 것들은 아직 파랐으니...
같은 위치에서도 줄에따라 세월에 흐름이 다르다는 것이 돌아와 생각해도 신비스럽기 짝이 없다.
부석사 당간지주는 보물 제255호다.
가을에 이런 색상의 배합이 나는 좋다.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 양편에 같은 모양의 석탑이 나란히 서 있는데 그중 서편의 탑이다.
석등과 무량수전이 나란히 보인다.
석등은 제17호 국보이고 무량수전은 제18호 국보다.
석등 뒤편 삼층석탑은 보물 제249호다.
부석사라는 이름이 지어지게된 부석은 정말 공중에 떠 있는 듯 하였고 여기에는 전설이 담겨 있다.
무량수전 뒷편을 살펴보았다.
앞을 봐도, 옆을 봐도, 뒤를 봐도, 아무리 봐도 참으로 단아함에 눈이 피곤치 않았다.
귀틀을 유심히 살폈다.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이 내게 다가왔다.
명당! 우로는 백두대간이 펼처져 있고 소백능선 주봉들이 모두다 선명히 눈에 찼으며 뒤로는 거룩한 이름
봉황산이 부석사를 감싸고 있었다.
해뜨는 동쪽에서 촬영한 무량수전
조금 멀리서 바라 본 무량수전
종탑 너머 흰구름과 하늘 빛이 곱다.
스님들에 장독대...간장, 고추장, 모두모두 참 맛날 것 같다
서편 아랫쪽에서 바라본 무량수전 전경
화려하지만 결국 허무다!
하늘은 샛파랑, 가을잎은 샛노랑
내가 먹어치운 살아있는 사과
그리고 하나 더...
먹보!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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