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제주 가을여행기
가을이면 남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수년간 홀연히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음은 아내 잘 만난 덕이라는 것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왔다.
특히 가을여행은 중년에게 있어 어느 계절보다 적합한 시기라는 감정을 나는 지니고 있다.
농부가 한 해 농사를 가을에 추수하듯 새로운 해를 맞이해 살아오면서 겪었던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며 마무리할 것들을 정리하기에 좋은, 일생이 저무는 시점과 동질감 있어서 일거다.
쉽지 않게 다녀온 이번 제주도 가을여행은 시종 바람이였다.
올레능선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들바람은 생명체들을 어루만지듯 살며시 흔들어 자연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치는 풍경을 연출하여 좋았는데 기상관계상 안전을 위하여 새로운 올레길로 들어서지 못하고
앵콜로 다시 걸은 일부 올레 7,8코스 바닷바람이 어찌나 사납던지 지난여름에 재밌게 보았던 영화 해운대
절정의 장면 쓰나미가 실제 내게 달려드는 착각이 들 정도로 너울을 엄청 크게 일으켜 해변을 걷는 내내
금방이라도 나를 삼킬 듯 공포감 조성하였으며 비가 섞인 바람에 펼친 우산 하나를 금새 꺾어 버렸다.
가을스러움에 정취를 찾아 오른 한라산 등산길 영실능선 산바람은 구름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다 오백나한과
병풍바위 주변을 맴돌면서 내가 보고자 하는 또렷한 풍경을 심술궂게 살짝 보여주다 감추다 숨바꼭질 하듯
노니는 모습은 꼭대기로 재촉하던 발걸음을 한동안 멈추고 멍하니 서서 신비한 감동으로 바라보게끔
나를 제자리에 낚아채기도 했었다.
그런데 바람을 겪어내는 재미가 또 하나 있었으니 그건 제주에 새로운 명물 새섬으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서였다.
무자비할 정도로 강하게 휘몰아치는 시련도 이젠 익숙해진 탓에 오히려 다리 쇠기둥에 부딪친 강풍이
질러대는 고통의 비명소리는 바람에 시달려온 내 심사로는 듣기에 아주 통쾌했다.
풍경사진을 담아오기보다는 그저 편안하게 정해진 계획 없이 걷기를 즐기고 자연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얻는다는데
비중을 두고 출발한 여행이었기에 작고 가벼운 디카만을 지참한 탓으로 바람이 연출해준 특별한 풍경들을 멋지게
담아 오지 못한 것은 작은 유감이지만 사진에 얽매이지 않아 보다 자유로왔던 3박 4일간 기억 속에 남겨진 것들
하나하나는 내가 제주에서 시간을 보냈던 그 어느 때 보다 시간에 밀도가 높아 수많은 여행의 기억속에서도
가장 빛날 찬란한 흔적들이다.
올레 3코스 쉼터
노란 빛깔의 유혹
절대 주인몰래 따 먹어서는 안 된다...?
제주 감과 귤의 어울림
통오름에서 바라본 풍경
독자봉 억새
가을 들꽃
바람을 담아온 사진작가 김영갑의 두모악 갤러리
바다목장 바람의 언덕
제목 : 풍경
바람이 얼마나 센지 카메라든 손이 떨려 이렇게 밖엔 담기지 않았다.
한라산으로 오르는 도중 돈내코 능선을 보았더니 심상치 않은 구름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비가 내렸을 때만 나타나는 오백나한 간헐폭포
바람이 몰고온 구름이 오백나한을 숨기려하고 있다.
점점 더 꼭꼭 숨기려하는 것이
그렇게 바람과 구름이 주연으로 연출하는 광경은 별다른 세상인 듯 몽환적이었다.
그러다 선심이라도 쓰듯이 간간히 오백나한이 도열한 봉우리들을 보여주긴 했다.
영실을 들머리로 어리목을 날머리로 내려와 어승생악으로 오른 된비알 길에서 발견한 멋진 풍경으로
고목에 이끼가 서려있고 이끼에 솟구친 줄기 가장자리엔 열매같은 것이 맺혀 있었는데 이처럼 송알송알 구름 이슬이
투명한 보석처럼 영롱한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 어찌 예쁘던지 바라보느라 한동안 발길 옮길 수 없었다.
새섬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새섬에서 나오는 길목에서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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