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겨울설산 산행기
2010년 1월 5일(화요일)
도봉산역-다락능선-Y계곡-자운봉-오봉-여성봉-송추입구
엄동설한이 지나는 시기엔 그저 둥지 안에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긴 한데 심심함에
젖어들어 100년 만에 최대적설이라는 서울 산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추위에 움츠렸던 자유는
높바람 타고 낭만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어제 못다 내린 눈발이 간헐적으로 휘날리는 이른 아침 출근시간대에 큰 배낭을 짊어지고
전철을 탄다는 게 일하러 나가는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놀러가는 한량이 민폐를 끼치게
되었다는 미안한 마음은 어둠을 열기 전부터 들었지만 막상 전철을 탄 이후에 내겐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하는 시련이 있었다.
폭설과 이어지는 한파로 인하여 앞서가는 전철이 문이 닫히지 않는 고장이 연속으로 발생하여
앞 역에서 출발하지 못한다는 안내멘트를 들으며 내가 탄 전철은 선로위에 대기하는 일을
수차 반복하면서 선로를 기다시피 앞으로 나갔고 전철 지연으로 인해 각역마다의 승객은
더 몰리는 악순환으로 전철 안은 지옥철이라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옛 생각나는 고된 현상이었지만 고생을 사서한다는 후회도 들고 한파에 대비한 중무장의
등산복을 착용한 나는 엄청난 땀과 호흡곤란증세까지 겪어 비상탈출을 검토하기도 했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내 나이쯤 되면 돈을 주고라도 고생을 면해야하거늘
나는 왜 이럴까?
통학과 통근의 수단이었던 1호선은 내 인생에 있어 실크로드다.
도봉산역에서 하차하며 고개 들어 찾아낸 도봉산마루를 바라보는 순간 그토록 고생한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말끔히 사라졌고 역시나 멋진 설경이구나!
이제 저 산에 오르면 멋진 풍경들이 기다리고 내 카메라 셔터는 바빠지겠지 하는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려 해도 빨라지는 발걸음을 어쩔 수는 없었다.
내가 북한산을 찾지 않고 도봉산을 찾아 온건 비록 궂은날 험한 루트라 말할 수 있지만,
서울에 오대명산,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주봉들을 조망하기
좋은 다락능선을 통과하며 산들에 설경을 조끔씩이나마 골고루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도봉산은 새하얀 백산으로 변했거늘 고집스레 남겨진 군데군데 검은 빛은 이젠 오히려
낯선 이방인처럼 보였고 산길은 깊은 눈이 쌓여있어 돌비알과 사면바위를 지나야할 땐
6발 아이젠을 착용했음에도 미끄러져 내리곤 했으며 이러는 과정에서 한번은 무릎을
찌어 출혈과 통증에 아픔도 있었다.
강원도 겨울 산에서 맞이하는 멋진 상고대는 도봉산에서는 산행 내내 찾아볼 수 없었고
설화만은 멋들어지게 피었지만, 설산 산행지로 도봉산이 적합치는 않구나하는 생각
들었는데 오늘 산행에 있어 다행인 것은 맑고 푸른 코발트빛 하늘아래 설경이 반짝반짝
빛나는 최상의 모습이었다는 것과 한낮 기온이 영하 8도로 측정되기는 했으나 바람이
없어 체감온도가 그리 낮지는 않아 날씨로 인한 시련은 없었다는 것이며 능선 길 차갑게
얼어붙은 눈일수록 아이젠에 밟히는 사각사각 소리가 유독 낭랑한 것이 듣기에 매우
상쾌했다는 것이다.
올겨울 눈이 다시 내린다면 그땐 북한산엘 올라 고결한 삶의 무늬를 하나 더 장식하련다.
-자유인-
에필로그;
사실 제대로 된 눈 구경을 하려면 눈이 올만한 시기에 기상예보를 믿고 마땅한 곳을 찾아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린 후 시간이 지날수록 하얀 눈도 썩어서 볼품
없어지기 때문으로 눈은 올 때나 막 그치고 난 뒤라야 볼만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던
기다리는 것은 좀처럼 오질 않는다. 하기사 그 누가 이런 사실을 모를까마는 그렇게 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로 나또한 그렇다.
그런데 갑자기 기록적으로 찾아온 설경이 펼쳐졌다. 그래서 나는 그제는 어려움을 뚫고
인천대공원을 찾아가 실시간 설경을 즐겼고 어제는 만사 제처 놓고 도봉산엘 오른 것으로
결국 다녀와 아내의 원망을 들어야했지만 이틀 연속으로 더할 나위 없는 설경을 즐길 수 있었던
나는 오늘도 후회 없어 행복하다.
언제 또다시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기록이 경신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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