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8코스 올레(18.8km)
산지천마당-사라봉-별도연대-신촌-닭머르-대섬-환혜장성-원당사-조천만세동산
2012년 2월 8일(수)/바람 세차고, 눈보라 날리고, 기온은 영하로 모든 게 어둑어둑한 날씨
수술 받은 지 80여일,
이제 곧 금식 후 집도해 주셨던 의사를 만나 수술 후 상태에 대한 검진을 받아야하는데
어떤 좋지 않은 결과를 알게 될까 막연한 불안감이 날이 닥쳐올수록 점점 나를 짓누른다.
맑고 시원한 겨울 제주 바람을 쏘이고 한라산 설경을 눈에 담는다면 어떤 상황이 내게
주어지던 떠나지 못했던 아쉬움은 적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 3박4일
일정으로 제주엘 다녀왔다.
예전처럼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제주의 첫날엔 관음사를 들머리로 한라산에
오를 예정이었는데 공항에 도착즉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거니 전날에 내린 폭설로 인하여
전구간이 입산 통제되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일정을 바꿔 뒷 순서였던 올레길을 먼저 걷는 것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겨울에도 따스한 이미지의 제주날씨가 오늘은 얼마나 사나운지 내가 가려는 모든
길을 막아서는 듯 했다. 세찬 바람에 눈보라 휘날리고 현재의 기온이 영하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진로를 결정하라는 듯 산지천 마당에 하얗게 싸여갔고 저녁 제주현지
기상 뉴스에 의하면 이날 김녕일대에는 5cm의 눈이 쌓였던 기록적인 제주의 겨울날이라 했다.
산은 나의 입장을 거부하고, 바다는 나를 덮쳐 삼켜버릴 듯 성을 내 철저히 외로워진 나는
대부분 고독했던 지난 날들과 병마와 싸웠던 지독한 시간들만이 아주 진하게 주마등처럼
스쳐지날뿐 따스한 사랑의 온기는 그닥 더듬을 꺼리 없는 인생의 뒤안길에 비쳐 밝은 미래를
예감하기 어렵건만 그 시간 희미하나마 옅은 미소로 반겨주는 올레길 여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18코스 산지천에서 걷기 시작한 올레길 해안을 지날 때면 바다에서는 성난 파도가 노도와 같이
밀려들었고 풍경에 취해 탄식의 소리를 지를 찰나면 잽싸게 딱 내 입맛에 맛좋을 정도의 짭짤한
바닷물이 입안에 튕겨져 들어오기도 하고 옷을 적시는 짠 물방울이 아껴야하는 고어자켓에
엉터리 글로 낙서를하기도 했지만 기분 상하지는 않았다.
파도가 세차게 검은 바위를 연속으로 때려대 금방이라도 조각조각 부수어버릴 것만 같은
광경에서는 행여 멋들어진 장면을 놓칠세라,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볼세라 지체하기도 했지만 거친 날씨 속에서도 마냥 즐거워진 발걸음은
18코스종점 조천만세동산을 지나 19코스 함덕해수욕장에서 어둠에 굴복 마무리하였다.
-자유인-